티스토리 뷰
목차

언더 더 스킨 인간의 몸을 입은 존재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지구에 내려와 인간 남성들을 유인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완벽히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도 없고 윤리적 판단도 결여된 존재다. 처음에는 단순한 임무를 수행하는 듯 보이지만, 그녀가 점점 인간의 외형뿐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관객은 거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영화는 외부에서 바라본 인간의 행동과 욕망, 그리고 연민까지 포착하며, 인간성과 그 경계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시각적으로는 미니멀하고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적 질문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SF라기보다는 철학적 실험에 가까운 영화다.
주인공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지만, 우리가 익숙한 ‘사람’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그녀는 인간의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가치에 관심이 없고, 오직 관찰자이자 수집자로서 움직인다. 이 모습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익숙한 외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깃든 이질감은 오히려 더 큰 불편함을 자아낸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은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관객은 그 시선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는 그녀의 움직임과 주변 인물들과의 간극을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SF지만, 실상은 인간 본질에 대한 관찰일지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깨어나는 순간들
주인공은 처음엔 감정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지 모른다. 인간의 말투, 표정, 관계, 육체의 반응들 속에서 그녀는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에 끌린다. 그러던 중,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남성과의 만남은 그녀의 시선을 바꾼다. 그 남자에게는 다른 이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며,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느끼는 존재’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말이 아닌 눈빛과 움직임으로 표현되며, 관객은 그녀의 내면에 감정이 깨어나는 순간을 조용히 목격하게 된다. 이 감정의 발생은 비극의 시작이기도 하다. 타자였던 그녀가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약함과 잔인함도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는 감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남긴다.
그녀는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지만, 점점 미묘한 감정의 흔적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한 관찰자였지만, 점차 인간의 삶과 관계에 호기심을 보이며 변화를 겪는다. 특히 길거리에서 만난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와의 장면은 그녀의 내면에 큰 파장을 남긴다. 단순히 희생자가 아닌, 그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이러한 변화는 ‘지구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들과 닮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혼란을 느끼며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 감정은 단순히 사랑이나 동정이 아닌,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다. 감정이 생겨난다는 건 곧 불안정해지는 것이고, 영화는 그 불안정함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따라간다.
낯설고도 아름다운 공포
『언더 더 스킨』은 표면적으로는 SF 스릴러지만, 그 분위기는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낯선 음악과 몽환적인 영상,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일상적인 풍경조차 이질적으로 만든다. 특히 남성들을 유인해 무언가에게 흡수되는 장면은 설명조차 없는 채 반복되며, 그 반복 속에 불쾌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이 스며든다. 이 영화의 공포는 단순히 죽음이나 위협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세계에 스며들었을 때 느끼는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감독은 장르적 장치를 최소화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관객의 불안을 끌어낸다. 그녀가 인간 세계 속에 점점 동화되며 느끼는 고립과 혼란도, 또 다른 형태의 공포로 다가온다. 정체를 잃은 외계 생명체가 겪는 존재적 불안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이 영화의 공포는 일반적인 괴물이나 살인 장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대신, 정적인 공간과 비일상적인 연출, 그리고 설명 없이 흐르는 장면들에서 서서히 관객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특히, 그녀가 남자들을 유인한 뒤, 어둡고 묘한 액체에 빠뜨리는 장면은 소리조차 사라진 채 진행되며 마치 꿈속처럼 느껴진다. 공포와 미학이 공존하는 이 장면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음악 또한 분위기를 더욱 기묘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전자음과 불협화음이 어우러진 사운드는 이질감과 몰입을 동시에 선사한다. 결국 이 영화는 외계 생명체의 눈으로 인간 세계를 바라보며, 낯선 세계에 내던져졌을 때 인간조차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역으로 관객에게 체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