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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Women
    3 Women

    3 Women 세 여자의 만남, 그리고 기묘하게 뒤엉킨 정체성

    젊고 수줍은 여자 ‘피키’가 캘리포니아의 사막 도시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요양원에서 일하게 되고, 활달하고 자기중심적인 동료 ‘밀리’와 함께 살게 된다. 처음엔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피키가 일방적으로 밀리에게 끌려다니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의 역동은 미묘하게 변화한다.
    또 다른 인물인 ‘윌리’는 과묵한 예술가로, 수영장 바닥에 상징적인 벽화를 그리고 있으며 세 사람의 관계에 조용히 스며든다. 영화는 이 세 여성이 함께 존재하며 점차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따라간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고, 인물들은 마치 서로의 정체성을 흡수하며 새로운 인물로 변해간다. 명확한 기승전결 없이,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따라가는 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는 내성적이고 순진한 젊은 여성 ‘피키’가 사막의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외향적이고 수다스러운 동료 ‘밀리’와 룸메이트가 되지만, 둘 사이엔 묘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처음엔 밀리가 주도권을 쥔 듯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밀리의 삶을 관찰하던 피키는 점차 그녀의 말투, 옷차림, 심지어 생활 방식까지 닮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역학은 서서히 반전되며, 주도권이 이동하는 순간들이 포착된다.
    여기에 말수가 거의 없는 또 다른 여성 ‘윌리’가 등장해, 이들 사이의 정체성 혼란을 더욱 부각시킨다. 세 여성은 각기 다른 듯하지만, 묘하게 서로의 삶과 감정에 영향을 주며 뒤엉켜간다. 영화는 명확한 사건 없이도 인물의 변화만으로 긴장감을 쌓아가며,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흡수하듯 뒤바뀌는 과정을 따라간다.

    흘러내리는 자아, 타인과 뒤섞인 정체성

    단순한 인간 관계의 변화가 아닌, 정체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피키, 밀리, 윌리 이 세 여인은 전혀 다른 성격과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마치 한 사람의 내면이 분열된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은 꿈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감정의 전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특히 피키는 처음엔 순종적인 인물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밀리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밀리는 외향적이고 세속적인 여성이지만 내면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윌리는 거의 말이 없지만 그 존재 자체가 무의식처럼 다른 인물들을 감싸고 있다. 세 인물은 마치 하나의 자아가 셋으로 나뉘어 현실을 살아가는 듯하다. 영화는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상징적 이미지와 감각적 흐름을 통해 조용히 말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세 개의 인물로 나누어 드러낸 듯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피키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자아를, 밀리는 사회적이고 외향적인 자아를, 윌리는 무의식과 본능에 가까운 자아를 상징한다. 이들은 마치 하나의 인격이 분열된 것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정체성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피키는 밀리를 관찰하며 그녀처럼 되고 싶어 하지만, 이는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점차 자기 자신을 지워가는 과정이 된다.
    밀리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만 외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윌리는 말없이 벽화 속 괴기한 형상들을 그리며 그녀들 모두의 내면을 상징한다. 이 영화는 자아가 타인에 의해 어떻게 흘러가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시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여성의 삶 안에서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욕망이 충돌할 때, 자아는 어떻게 왜곡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조용히 그려낸다.

    몽환적이지만 날카로운 감정의 흐름

    명확한 스토리보다는 분위기와 감정에 집중한 작품이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듯한 연출로, 관객이 인물들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도록 유도한다. 특히 부유하듯 움직이는 카메라와 부드러운 사운드, 그리고 색채 대비가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설명 없이 지나가지만, 그 안에는 각 인물의 내면과 억눌린 욕망이 층층이 쌓여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정과 미묘한 행동 하나하나가 큰 파문처럼 퍼져 나가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심리의 깊이를 체험하게 된다. 이 작품은 말보다는 느낌에, 설명보다는 분위기에 의존하며, 꿈속에 있는 듯한 흐름 속에서 정서적 충격을 준다. 시시각각 스며드는 감정의 잔향이 오래 남으며, 감상 이후에도 끊임없이 해석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라기보다는 하나의 꿈처럼 느껴진다. 명확한 서사보다는 감정과 분위기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며, 관객은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단 인물의 심리에 이끌리게 된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연출은 인물들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시선과 움직임, 공간의 침묵을 통해 내면을 드러낸다.
    수영장 바닥의 벽화, 거울에 비친 얼굴, 반복되는 일상 속 태도 변화 등은 모두 말 없는 대사처럼 작용하며 관객의 무의식을 건드린다. 세 여성이 보이는 외형적인 변화보다 더 인상적인 건, 관계의 흐름이 주는 심리적 파장이다. 영화는 감정이 어떻게 전염되고, 자아가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래서 보고 나면 줄거리는 흐릿하게 남지만,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감정의 잔상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그 점이 이 작품의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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