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더 더 스킨 인간의 몸을 입은 존재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지구에 내려와 인간 남성들을 유인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완벽히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도 없고 윤리적 판단도 결여된 존재다. 처음에는 단순한 임무를 수행하는 듯 보이지만, 그녀가 점점 인간의 외형뿐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관객은 거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영화는 외부에서 바라본 인간의 행동과 욕망, 그리고 연민까지 포착하며, 인간성과 그 경계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시각적으로는 미니멀하고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적 질문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SF라기보다는 철학적 ..

에터널 션샤인 기억을 지운다는 선택『에터널 선샤인』은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다는, 어쩌면 모두가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가정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조엘은 연인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오히려 조엘은 그녀와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과거의 행복이 한 장면씩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조엘은 그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관객은 기억이라는 것이 단순한 정보가 아닌, 감정의 총체이며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지우고 싶다고 느끼는 감정조차도 결국은 우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이라는 걸 말한다. 그 기억이 아프더라도, 때로는 지니고 살아가는 편이 더 아름다울..

The Celebration 생일 파티가 무너뜨린 가족의 균열아버지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대저택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화기애애해 보이는 이 모임은 곧 충격적인 진실이 폭로되며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장남 크리스티안은 만찬 도중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자신과 여동생에게 성적인 학대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처음엔 모두 충격에 빠지지만, 곧 분위기는 외면과 침묵으로 흘러가고, 손님들과 가족들은 그 진실을 모른 척 하려 한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이야기가 묵살되는 걸 보며 또다시 폭로를 이어가고,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단순한 생일 파티는 점차 한 가족의 위선과 억압이 터져나오는 무대로 변하고, 영화는 그 과정을 숨김없이 따라간다. 인물 간의 대화와 침묵, 그리고..

3 Women 세 여자의 만남, 그리고 기묘하게 뒤엉킨 정체성젊고 수줍은 여자 ‘피키’가 캘리포니아의 사막 도시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요양원에서 일하게 되고, 활달하고 자기중심적인 동료 ‘밀리’와 함께 살게 된다. 처음엔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피키가 일방적으로 밀리에게 끌려다니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의 역동은 미묘하게 변화한다.또 다른 인물인 ‘윌리’는 과묵한 예술가로, 수영장 바닥에 상징적인 벽화를 그리고 있으며 세 사람의 관계에 조용히 스며든다. 영화는 이 세 여성이 함께 존재하며 점차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따라간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고, 인물들은 마치 서로의 정체성을 흡수하며 새로운 인물로 변해간다. 명확한 기승전결 없이, 인물의 ..

폭력과 피로 엮인 두 사람의 만남자비 없는 채권 추심자 강도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강도는 도시 외곽의 음침한 공장지대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잔혹하게 괴롭히며 돈을 뜯어낸다. 그에겐 인간적인 감정도, 연민도 없다.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인물이다.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등장해 자신이 그의 친어머니라고 말하며 따라다닌다. 처음에는 경멸하고 밀어내지만, 그녀의 존재는 강도의 내면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점차 그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는 이 둘 사이에 맺어지는 묘한 관계를 통해 점점 인간성과 구원, 그리고 복수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끌어낸다. 단순히 모자 관계의 재회가 아닌, 이 만..

I Am Not a Witch 붉은 리본에 묶인 소녀의 침묵마녀로 지목된 어린 소녀 ‘슐라’가 아프리카의 외진 마을에서 겪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슐라는 갑작스럽게 체포되어 마녀라고 불리는 여성들의 무리 속에 편입된다. 그녀는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긴 붉은 리본에 묶인 채 살아가게 되는데, 그 리본은 단순한 상징이 아닌, 그녀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의 물리적 구현이다.정부 관리들은 슐라를 전시물처럼 다루며 예언 능력을 이용하려 하고, 그녀의 존재는 점점 상품처럼 변한다. 어린 소녀는 판단도, 선택도 허락받지 못한 채 어른들의 프레임 속에서 조용히 순응할 뿐이다. 영화는 슐라의 무표정한 얼굴을 자주 비추며, 말 대신 감정을 전달한다. 그녀의 침묵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